여행은 성격 검사보다 정확합니다. 사흘만 같이 다녀보면 다 나와요.
출발 전부터 시작됩니다
표를 만드는 쪽 — ESTJ, ISTJ, INTJ, ENTJ
카톡방에 스프레드시트 링크가 올라옵니다. 시간대별 동선, 이동수단, 예상 비용, 예비 일정까지 들어 있어요.
이 사람들에게 계획은 통제가 아니라 안심입니다. 준비가 끝나야 마음 놓고 놉니다. INTJ는 여기에 대안까지 만들어요. 비 오면 갈 곳 목록이 따로 있고, 가게가 문을 닫았을 때의 차선책도 정해져 있습니다.
아무것도 안 하는 쪽 — ENFP, ESFP, ISFP, ESTP
"좋아 좋아"만 하고 아무것도 안 봅니다. 공항 가는 길에 숙소를 찾기도 해요.
무책임한 게 아니라 정말로 그게 재밌다고 생각합니다. 정해두면 발견할 게 없어지니까요.
현지에서 갈립니다
계획형은 지도를 봅니다. 즉흥형은 골목을 봅니다.
계획형이 "다음 일정 30분 남았어"라고 할 때, 즉흥형은 저 골목 끝에 뭐가 있는지 보러 갑니다. 한 명은 시계를 보고 한 명은 풍경을 보는 거예요. 여기서 첫 마찰이 생깁니다.
그런데 재밌는 건, 여행 끝나고 제일 많이 얘기하는 장면은 대체로 계획에 없던 것이라는 점입니다. 우연히 들어간 가게, 길 잃고 발견한 골목 같은 거요. 계획형도 그건 인정합니다.
혈액형이 얹히면 또 갈립니다
같은 계획형이어도 A형과 O형은 다릅니다.
A형은 표대로 안 되면 조용해집니다. 화를 내는 게 아니라 혼자 다시 계산해요. 이때 "괜찮아?"라고 물으면 "응"이라고 답하는데 대체로 안 괜찮습니다.
O형은 표가 틀어져도 사람이 즐거우면 넘어갑니다. 대신 누가 소외되면 그걸 못 견뎌요.
B형은 계획형이어도 즉흥이 섞입니다. 일정표는 분 단위로 짜놓고 목적지가 폐공장인 발랄한 카키(B형 ISTJ) 같은 경우요.
AB형은 혼자 다니는 시간을 반드시 확보합니다. 단체 여행에서도 반나절은 사라져요.
총무가 되는 사람
여행에 꼭 한 명 있습니다. 영수증을 모으고, 정산표를 만들고, 마지막 날에 1원 단위까지 맞춰서 보내는 사람이요.
대체로 ISTJ나 ESTJ입니다. 아무도 부탁하지 않았는데 자기가 합니다. 안 하면 불안해서요.
이 사람에게는 정산이 끝난 뒤 한마디가 필요합니다. "네 덕에 편했어." 이 말 한마디면 다음 여행도 총무를 맡아줍니다.
같이 가려면 빈칸을 만드세요
경험상 제일 잘 통한 방법은 일정표에 미정 시간을 명시하는 것이었습니다.
"오후 2~5시: 자유"라고 적어두면 계획형은 그 칸이 있어서 안심하고, 즉흥형은 그 시간에 마음껏 헤맵니다. 같은 세 시간인데 예정된 세 시간이 되면 아무도 안 불편해집니다.
여행 셋째 날에 왜 꼭 한 번 터지는지는 여행 셋째 날에 싸우는 MBTI 조합에 더 적어뒀습니다.



